10화. 그림자의 마지막 노래
방 안에는 두 명의 ‘이연’이 서 있었다. 하나는 지금껏 살아온 백이연, 그리고 또 하나는 그녀가 감정의 골짜기에 묻어둔 또 다른 ‘자기 자신’. 거울 속에서 나온 그 그림자는 어딘가 슬픈 얼굴로 이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너야. 너의 외면, 너의 상처, 너의 기억, 그리고—— 너의 진심.』
이연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온몸이 떨렸다. 그것은 공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그림자를 마주하는 순간, 자신이 지금껏 얼마나 많은 감정을 외면해 왔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티기 위해 무표정으로 살아왔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네가 진짜 나라는 거야?”
『나는 너의 일부야. 네가 두려워했던, 하지만 네 안에 있었던 감정. 넌 날 잊고 싶어 했지만, 난 사라지지 않았어.』
이연은 거울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림자는 마치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 손을 뻗었다. 그 손끝엔 차가움이 아닌, 묘한 따스함이 스며 있었다.
“왜 이제야 나왔어…”
『네가 이제서야 나를 불렀잖아. 기억 속 어두운 방 안, 울고 있던 아이. 넌 그 아이가 낯설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 아이가 바로 너였어.』
그림자의 말은 날카로웠지만 동시에 부드러웠다. 이연은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스스로를 억눌렀던 시간, 친구들 사이에서 튀지 않기 위해 자기주장을 숨겼던 순간들, 그리고 진아를 외면했던 과거.
모든 장면에 공통적으로 등장한 것은—— 바로 이 그림자였다.
『나는 네가 무시했던 시간들이야. 말하지 못한 말들, 참아온 눈물들, 포기했던 네 진심.』
“그래… 맞아. 넌 내가 만든 거야. 하지만…”
이연은 손을 들어 그녀를 마주 잡았다.
“이제 널 버리지 않을게.”
그림자의 눈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 말… 기다렸어. 아주 오래.』
그 순간, 방 안이 빛으로 물들었다. 마치 해가 떠오르는 새벽처럼, 어둠은 걷히고 있었다. 그림자는 점점 빛 속으로 스며들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녹아드는 느낌이었다.
『이제, 네가 나를 안고 가야 해. 그래야 진짜 ‘너’가 완성돼.』
“알았어.”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림자가 사라지고, 이연은 혼자 남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묘한 충만함이 가슴속에 밀려왔다. 자신을 온전히 마주하고 받아들였다는 확신.
그 순간, 현관문이 열렸다. 도윤이 서 있었다. 이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끝났어요?”
“아니요.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그는 그녀의 눈빛을 보고 모든 걸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이제 진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시작할 수 있겠네요.”
이연은 도윤의 손을 잡았다. 그들의 손끝이 맞닿은 그 자리에서——
방 안에 고요한 울림이 퍼졌다.
『기억해 줘. 우린 모두, 누군가의 그림자였어.』
이연은 고개를 들었다. 창밖엔 어느새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림자의 밤은 끝났다. 하지만 기억은, 그리고 그 기억 속 존재들은—— 앞으로도 그녀 안에서 함께 숨 쉴 것이다.
[시즌1 완결 클리프행어]
이연은 자신의 내면의 그림자와 화해하며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였지만, 또 다른 그림자들—— 기억에서 지워진 이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도심 어딘가에 남아 있다. 시즌2에서는 이연과 도윤이 그 그림자들을 ‘기억하는 자’로서 마주하며, 더욱 깊은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