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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연가》 시즌1 5화. 잊힌 아이의 이름

writerwilshere 2025. 5. 16. 22:00

5화. 잊힌 아이의 이름

오래된 앨범 한 권. 먼지 쌓인 표지를 조심스레 넘기며, 이연은 다시 자신이 묻어둔 과거를 들춰냈다. 도윤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누군가의 그림자’였고, 동시에 ‘누군가의 실체’이기도 했다.

사진 속에는 낡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 한 명——.

“이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

사진 가장자리, 단체 사진 속 어색하게 떨어져 선 소녀. 표정도 없고, 시선도 카메라를 보지 않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얼굴… 최근에 본 적 있어…”

이연은 순간, 며칠 전 폐건물 창가에 있던 그림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흐릿했지만 확실했다. 바로 이 아이였다. 이름을 잊은 아이.

이연은 다급히 뒷면을 뒤졌다. 손글씨로 적힌 명단. 그러나 그 아이의 이름만, 누군가가 매직으로 지운 듯 까맣게 칠해져 있었다. 그 순간, 뇌리를 스치는 한 문장.

『나는 누구였을까?』

그 문장은 그녀의 어릴 적 일기장에서 봤던 문구였다. 이상하게 자주 쓰곤 했던 말. 기억나지 않는 친구, 늘 그림자처럼 곁에 있던 존재——

“……진아.”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

“그 아이 이름이 진아였어. 나랑 같은 반이었고… 항상 나 뒤에서 걷던 애였어.”

그녀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붙던 진아. 묻지도 따지지도 않던 아이. 소리 없이 웃고, 조용히 사라졌던——

“그 애, 어느 날 갑자기 학교를 안 나왔지…”

도윤은 메모를 꺼내 확인했다.

“박진아. 2009년 11월 2일 실종. 미등재 실종으로 처리됨. 부모가 없었고, 주소도 정확히 등록되지 않았던 케이스.”

“아무도 찾지 않았다는 거죠.”

“그리고 지금—— 당신을 찾고 있어요.”

이연은 다시 사진 속 진아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 그 눈동자. 그것은 누군가에게 외면당하고, 잊히고, 버려졌던 사람의 눈빛이었다.

“진아가… 그림자가 된 거야?”

“정확히는—— 기억되지 못한 존재가 감정의 덩어리로 형체화된 겁니다. 그 감정이 강렬할수록, 더 선명한 실체를 가지게 되죠.”

도윤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당신을 따라다니는 이유. 단순한 복수일까요? 아니면—”

이연은 대답할 수 없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진아는 그녀에게서 어떤 ‘기억’을 돌려받길 원하고 있었다.

“… 진아가 나한테 잊힌 이름이라면, 내가 기억해 내는 순간, 그녀는 나를 지울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는 걸까요?”

“그럴 수도 있어요.”

창문이 다시, 스르륵 흔들렸다. 어디선가 작은 손이 유리창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날 기억했어.』


[클리프행어]
잊힌 아이 진아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연이 기억을 되찾을수록 그녀는 그림자의 현실에 더 깊이 끌려들고, 도윤 역시 그와 얽힌 과거를 숨기고 있다. 다음 화에서는 도윤의 과거와 진아와의 연결고리가 밝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