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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연가》 시즌1 6화. 두 번째 그림자

writerwilshere 2025. 5. 17. 02:00

6화. 두 번째 그림자

“도윤 씨, 당신은 진아를 아는 거죠?”

이연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의 눈빛, 그 짧은 침묵들이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도윤은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사무실 벽에 기대 선 그는, 한참을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다 이연 쪽으로 돌아섰다.

“2009년 가을, 중학생이던 난 가출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부모의 관심도, 애정도 없었죠. 경찰서에 몇 번이나 들어갔고, 그때마다 보호관찰소에 맡겨졌어요. 거기서… 진아를 처음 봤습니다.”

이연은 숨을 멈췄다. 도윤이 말을 이었다.

“진아는 말이 없었어요. 항상 혼자였고, 무표정했죠. 하지만 묘하게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는 눈빛이 있었어요. 나 역시 그녀가 날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죠. 말은 안 했지만… 이상하게 위로받는 느낌이었어요.”

그는 오래된 상처를 꺼내듯 조용히 털어놓았다.

“진아는 나에게 유일하게 웃어준 아이였습니다. 정말… 단 한 번, 웃었죠. 내가 경찰이 되겠다고 했을 때. ‘그럼 다음엔 내가 실종돼도, 넌 날 찾아줄 수 있겠네?’라고.”

이연의 눈이 커졌다. 그 말은——

“하지만 난… 그녀가 사라진 후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결국 그녀를 잊고 살았고, 그게…”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지금의 죄책감이 된 거죠.”

이연은 그 말을 듣고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진아는 단지 잊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라도 살고 싶었던 소녀. 그리고 그 기억에서조차 밀려난 후, 그림자가 되어버린 존재.

하지만——

“진아만이 아니에요.”

이연은 떨리는 손으로 도윤에게 또 다른 영상을 보여주었다. 을지로 폐건물 영상의 프레임을 확대한 장면. 거기엔 분명히 진아 외에도 또 하나의 그림자가 서 있었다. 몸집이 큰 남성 형체. 그리고…

“이 그림자, 당신을 바라보고 있어요.”

도윤은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설마.”

그는 서류 더미를 뒤지더니, 오래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실종자 명단 중 유일하게 사진조차 없는 남자 이름 하나.

‘서재현. 1975년생. 도윤의 아버지.’

“……그가 왜 여기에 있어?”

도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사람… 열두 살 무렵에 집을 나갔어요. 술, 폭력, 가출. 나와 어머니를 두고 떠났죠. 전 그를 죽었다고 믿고 살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거예요. 그는 사라진 거죠. 다른 그림자들처럼.”

그림자들은 단순히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잊히기를 원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세상에 의해, 가족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기억에서 버려진 존재들.

그 순간, 사무실 안의 전등이 깜빡였다. 갑작스레 내려앉은 정적. 그리고——

『날 기억했구나, 도윤아.』

공간이 얼어붙었다.

이연은 돌아섰고, 그곳에는——

벽에 손을 짚은 채 서 있는 그림자 하나. 키가 크고, 어깨가 넓으며,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형체는 어두웠지만, 그 눈빛만은 선명하게 도윤을 향하고 있었다.

“……아버지?”

도윤의 입술이 떨렸다. 손이 저절로 내려갔다. 그 순간, 그림자는 손을 내밀며 속삭였다.

『지금도, 넌 날 두려워하니?』


[클리프행어]
도윤 앞에 나타난 두 번째 그림자의 정체는 그의 과거, 곧 아버지였다. 그림자는 단순한 망령이 아닌 ‘감정의 잔재’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이연과 도윤은 자신들의 기억이 만들어낸 어둠과 직면하게 된다. 다음 화에서는 그림자의 본격적인 침식이 시작된다.